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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비의생각]   2010/07/12 09:30
고정수(다카이 오사무) | 칼럼니스트 

 2010년 6월 2일. 한국에서는 지방선거가 한창이었던 바로 그날, 일본 정치계에서는 빅뉴스가 보도되어 국민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다름이 아니라 하토야마 총리의 사임 기자회견이 그것이었다. 지난해에는 정치자금 위장 문제를 둘러싸고 어머니한테서 9억 엔이나 “선물”을 받았었다는 것이 발각돼 국민들에게 불신감을 품게 만들었던 데다가, 올해 들어 오키나와 미군기지 이전 문제에 대한 대응에서 실수를 연발하면서 오키나와 현 주민뿐만 아니라 국민 전체를 화나게 했다. 지난 해 총선 전에 미군 기지를 최악의 경우에도 오키나와 현 밖으로 옮기겠다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던 것이다. 그로 인해 지난해 9월 16일 국회에서 지명을 받은 지 266일 만에 사퇴를 함으로써 현행 헌법이 시행된 이래 6번째로 짧은 재위기간을 기록하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2006년에 5년에 걸쳐 장기 정권을 유지해왔던 고이즈미 총리가 “용퇴(勇退)”한 후에 취임한 세 명의 자민당에 속한 아베 신조, 후쿠다 야스오, 아소 타로 전 총리 3명이 모두 1년 정도의 단기 정권으로 끝나 버렸다. 사정은 각자 달랐지만 명확한 정책을 내세우지 못한 이유로 국민의 지지를 잃고 결국 사임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것은 그 공통점이다. 이번 하토야마 총리 사임회견에서도 “국민들이 내 말을 들어주지 않게 되었다.”는 말이 있었지만, 이런 식으로 “민의”의 의해 정권을 바꿀 수 있다는 게 한국 사람의 눈으로 보면 신기한 일이기도 하고 또 어쩌면 부러운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 이런 식으로 “민의”에 따라 정권이 교체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에 대해서는 더 많이 생각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우선 여기서 말하는 “민의”는 어디까지나 지금 살고 있는 이의 의견에 지니지 않는다는 것에 유의해야 한다. 예를 들어 환경 문제에 있어서는 가라타니가 말하는 “미래의 타자” 즉, 아직 태어나지 않는 이에 대해서 배려할 필요가 있는데, “민의”에 너무 많이 의지하면 지금 살고 있는 이의 이익이 우선시되기 때문에 앞으로는 비참한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이 문제가 다름 아니라 대의제의 위기로 연결될 우려가 있다는 일이다. 왜냐하면 어떻게 보면 이번 사태도 결국에는 선거(국민투표)를 통하지 않고 정권이 바뀌었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가라타니 고진은 <일본정신의 기원>(2003, 이매진, 송태욱 옮김.) 제 3장 <투표와 제비뽑기>에서 대표제의 최고 형태로 간주할 수 있는 보통선거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한다.


 우리가 대의제의 최고 형태라고 생각하는 보통선거에 의해 구성된 의회는 본래 의미의 ‘대표’ 기능을 다하지 못한다. 선출된 대표자는 자신들을 뽑아준 자에게 구속되지 않는다는 것이 근대 의회제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정치가는 당선된 뒤 다른 정당으로 옮겨도 되고 정책을 바꿔도 된다. 왜냐하면 투표한 사람은 누구도 자신이 그 사람에게 투표했다는 증거를 제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정치가가 자신들을 대표하지 않는다고, 또는 배신했다고 생각한다.(중략) 제한선거와 달리 보통선거는 아주 이상적인 대의제라고 생각되기 때문에 정치가의 그러한 행동은 대의제에 대한 배반이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164쪽.)


 보통선거를 바라는 자는 보통선거로 민의가 더욱 잘 대표될 걸이라고 기대한다. 그런데 실제로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의회에 대한 실망과 반발이 분출되는 것이다. 그 결과 의회가 쓸데없는 존재처럼 보이게 된다. 보통선거는 진정한 ‘대의제’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보통선거가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때 사람들은 진정한 대의제를 찾는다. 진실로 대표되는 것을 찾는 것이다. (166쪽.)

 그 결과 진정한 대표를 찾는 사람들은 느릿느릿 논의만 하고 있는 의회를 미심쩍은 눈으로 바라보게 되어 독재 권력을 환영하기에 이른다고 가라타니는 말한다. 그리고 그런 의회제 민주주의에 대한 불만은 “민의”가 더 충실하게 대표되는 듯한 선거나 투표의 형태를 취하려는 방향으로 나아간다고 지적한다. 전에 이 칼럼에서 소개한 아즈마 히로키의 <민주주의2.0 (=전자 투표에 의한 정치 운영 시스템)>도 그런 방향 중 하나에 속한다. 그러나 그런 시스템에는 다음과 같은 위험성이 있다는 것이 가라타니의 생각이다.

 국민투표는 그런 시스템(=전자식 투표 시스템, 필자에 의한 주석)으로 간단하게 실현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의회(대의제)는 불필요하게 될지도 모른다. 모든 경우를 전자식 국민투표를 통해 결정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방식은 민의를 직접 또는 진실로 ‘대표’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실 아주 위험한 것이기도 하다. 애당초 ‘민의’란 무엇일까? 일반 사람들이 가진 의견은 사전에 정치가, 관료, 대중매체들에 의해 입력된 것이고, 자발적이라고 해도 그저 주어진 선택지에서 선택할 뿐이다. 그리고 현재 대중매체가 실시하는 여론조사가 보여주듯이 국민투표의 결과는 끊임없이 부동(浮動)한다. (179쪽)

 그런데 국민투표로 한 번 결정된 일은 간단하게 부정할 수 없다. 특히 외국과 한 약속인 경우는 더욱 그렇다. 만약 그렇게 되면 국가로서 지니는 동일성은 존재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단 정한 것은 쉽게 바꿀 수 없다고 한다면 의견을 바꾼 투표자들은 끊임없이 지금 자신들의 의견이 대표되고 있지 않다고 느낄 것이다. 더욱이 국민투표로 정한 결정이 실패로 끝난 경우, 누가에게 책임이 있는 것일까? 잘못된 판단을 한 사람들 자신이자 ‘민의’ 자체다. 그러면 그 결과는 자신이 판단하고 결정한 것을 포기하고 판단과 결정을 카리스마적인 지도자나 관료조직에 맡겨버리는 것으로 끝난다. (180쪽.)

 다시 말해 일견 “민의”가 총리(대표자)를 정하는 것처럼 보이는 지금 일본의 상황은 별로 환영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독재적인 체제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의 위험한 징후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민주주의를 보증하는 선거 제도는 없애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독재 체제를 막을 수 있을까? 가라타니가 제창한 제비뽑기의 도입을 포함해 그것에 대해서 더 많이 생각하는 것이 급선무가 아닐까 싶다. 


고정수(다카이 오사무) : 오사카에서 태어나 오사카에서 자란 100% 일본인. 2000년 말에 영화 <쉬리>를 보고 충격을 받아 독학으로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2005년 《씨네21》에  〈한 일본 사람 눈으로 보는 한국 영화〉라는 블로그를 만들어 한국과 일본의 문화 번역을 하고 있다. 2006년부터 2년 동안 웹진 《매거진t》에 〈나는 오사카 TV 오타쿠〉를 연재하기도 했다. 지금은 육체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1년에 두세 번 한국에 여행을 간다. 한국을 방문하여 블로그에서 알게 된 분들과 친교를 맺는 즐거움에 푹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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