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석 | 문화기획자
문화기획자라는 타이틀을 달고 활동하면서 도대체 문화기획자가 뭐하는 거냐는 질문을 종종 듣는다. 기획자라는 타이틀 앞에는 공연 · 전시 · 이벤트 · 홍보 등 많은 수식어들이 붙고 일의 분야도 다양하다. 어떻게 보면 문화기획자는 이 모두를 어줍게 건드리는 어정뜬 기획자 정도로 비춰질 수 있다. 그 만큼 사회에서 아직 자리매김이 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 분야에 조금 관심을 가지고 살펴본 사람들은 ‘1인 창조 기업’만큼이나 트랜디한 영역이라는 사실을 알 것이다. 새로운 타이틀은 그 만큼이나 호기심을 자극하고 환심을 끄는 거품이 존재한다. 일부에서 문화기획자학교를 만들어 양산하고 있는데 그 커리큘럼들을 들여다보면 실상 문화 콘텐츠 또는 행사 기획과 다를 바가 없고, 그래서 지자체에서 우후죽순처럼 번져가는 축제 만들기 유행에 뛰어드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나는 그런 거품 속에 살고 싶어 불나방 중 한 마리로 뛰어들었단 말인가?
조금 긴 이야기의 시작은 태국으로 거슬러 간다. 근 10년 동안 NPO(Non-Profit Organization)에서 활동하던 나는 방콕의 한 번화한 골목에서 다큐멘터리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봉사 활동 뿐 아니라 다큐멘터리 작업은 진실을 알림으로 사회 변화의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이 나의 작업에 힘을 실어주고 있었다. 당시 태국은 주요 관광국으로 산업구조상 주수익을 관광 산업에서, 그 다음을 농업에서 얻고 있었다. 처음에는 길거리에 굴러다니는 대부분의 자동차가 한국에서도 고급으로 여겨지는 유명 메이커이고, 전자제품들도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제품들 밖에 볼 수 없어 상당히 사치스러운 나라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태국이 기반 산업이 매우 취약해 자생적 경제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오히려 슬프게 여겨졌다. 그 슬픔의 정점에 있는 태국의 유흥가는 관광 산업으로 연명해야하는 한 국가의 그늘을 화려하게 비춰주고 있었다. 섹스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 비키니가 아닌 그녀들의 실상을 벗기기 위해 나는 용감하게도 카메라를 들이대고 말을 걸었다. 매니저는 공짜는 없다는 제스처와 함께 음료를 시키길 종용했고, 나는 제일 싼 콜라를 시키고는 나의 작업을 시작했다. 이래저래 쭈뼛거리는 헛소리를 몇 번 지껄이다 옆자리로 다가온 젊은 그녀에게 어쩌다 이 일을 하게 되었냐고 망설이며 물었다. 그 사연을 짧게 설명하자면, 자신은 태국 북부의 작은 농가에서 태어났고 도저히 농사짓는 것만으로는 먹고 살 수 없는 사정으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수도인 방콕으로 일하러 나오게 되었다고 한다. 그녀도 여느 젊은이들과 다르지 않게 공장에서 일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러나 이내 공장에서 얻는 임금으로는 방콕의 높은 물가 때문에 가족의 생계는 물론 자신의 생활비마저도 부족하다는 사실을 체득한다. 그 후로 마사지, 청소 등의 관광과 관련된 서비스업을 전전하다가 가족까지 부양해야하는 사회적 책임에 떠밀려 결국 윤락업에 종사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방인의 시선으로 볼 때, 문제적으로 보이는 부분은 윤락녀가 되는 것이 사회 종교적 의미에서 보시(布施)와 유사하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스스로를 바수밀다(선재동자의 53선지식에 나오는 창녀로 그녀에게 다가오는 남자들의 제 각각의 욕구에 응하며 불도를 깨우치게 한다는 여인)와 동일시하는 것일까? 당시만 해도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한 실천적 봉사를 하고 있다고 여겼던 나는 사회적 문제는 구조적 문제의 해결을 필수적으로 수반한다는 사실을 절감하는 동시에 내 실천에 극도의 초라함을 느끼게 되었고, 귀국 후 사회학으로 전공을 바꿔 다시 학업에 들어갔다.
답답함: 비판의 효력 상실과 이론가의 생태적 한계
진보적 철학 내지 사회과학에서 주요 담론 중 하나인 비판이론이 가진 힘은 상대에게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게 한다는 데에 있다. 이 얼마나 매력적인가? 진실을 까발림으로써 상대방에게 한방 먹일 수 있다는 것이…. 진정 저널리즘이 가져야 할 사회적 기능이 바로 이것이리라. 애초에 가졌던 문제의식과 함께 대학원에서의 나의 학문적 관심은 자연스럽게 비판이론으로 이끌렸고, 그것은 실천적 학업에 일종의 희망으로 비춰졌다. 비단 비판이론 뿐만 아니라도 비판 혹은 비평의 사회적 역할은 지배적 인식이 가진 권력에 경종을 울리고 그것이 가진 당위적 힘을 ‘언어적 차원’에서 무화시키는 데에 있지 않을까?
혹, 비판이론은 변혁의 기획을 성취할 수 있을지는 모르나, 비판이론이 기획의 성취를 위해 필연적으로 구축해낼 수밖에 없는 진리는 전체적 속성(totalitarian attribute)에 의해 동시에 대중들을 소외시킨다. 대중 계몽을 위해 규범적 당위를 상정할 수밖에 없는 이론은 억압적 사회구조의 대안이 될 수 없다. 학계를 벗어나 사회 세계의 해방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비판이론은 이론 제시를 통한 사회적 역할이라는 이론가의 생태적 한계를 지닌다. 그것의 성공은 대중의 지적 예속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더 결정적인 문제점은 대중들이 이론가들의 말에 그다지 귀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이론가의 분석적 실재 구성과 그 실재 속에서 살아가는 실천자 사이에 메울 수 없는 간극이 있기 때문이다. 실천은 언어 세계를 모태로 한다고도 할 수 있지만, 언어와 실천 중 무엇이 우선하는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단순 인과론적 분석을 거부하는 현대 철학의 토양에도 불구하고 비판이론의 접근 방식은 이상하게 언어적 차원에 머물러 있으니 말이다. 해방을 위한 탐구 과정에서 나는 항상 이 부분이 답답했다. 이론으로 밖에 말할 수 없는 이론가의 생태적 한계 말이다.
딱딱한 이야기를 좀더 하자면, 생활세계의 분류 체계는 이론가가 변형시키기 힘들다. 일상에서 행해지는 실천은 지배적인 분류 체계들이 만들어놓은 물리적 공간 안에서 더욱 강화되기 때문이다. 분류 체계가 가진 가치의 문제는 곧 미학적 문제기도 한데, 억압적 사회구조에서 지배적 인식을 심어놓는 사물과 물리적 실천을 대안적 미학과 함께 대체해 나가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것이 내가 예술 영역에 뛰어든 이유 중 하나다. 문화적 결과물들을 대중들의 일상에 심어놓되 진리로 강요하지 말 것. 대안적 사물들을 통한 체험과 사유의 상호작용을 가능하도록 할 것. 그것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도출될 인식을 예측하고 통제하되 전적으로 대중들의 자율적 합리성을 구축하도록 할 것. 이것들이 타인이 아닌 나 스스로에게 상정하는 규범이다.
빈자와 창녀는 고매하신 지식인의 알아듣지 못하는 헛소리를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 진리(?)를 오인하는(misrecognized) 그들에게 던지는 비판이론가들의 말은 “너는 착각하고 있어! 정신 차려!”일뿐이다. 심지어 경제적 부와 함께 유명세를 떨치는 예술가들의 위선적 작품들 또한 그들에게는 무가치하다. 그러니 문화기획자랍시고 뛰어든 이 일이 전적으로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것도 아니다. 사회 세계의 실재는 사물을 만들어 내는 당사자들의 몫이다. 지식인이든 당신이 속한 영역의 지배자이든 지적 예속으로부터 벗어나 자기 창조하는 바로 당신. 어떤 부분에서는 자크 랑시에르가 말하듯 자기 해방한 무수한 자아들이 만들어내는 세계야말로 진정 해방된 세계일 것이다. 다만, 우리에겐 자기 창조하는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이며, 다시 자기 창조를 위해 성찰하는 윤리가 필요하다. 해방에 관한 탐구의 기로에서 만났던 그녀. 그녀는 적어도 나에게 있어선 바수밀다였다. 자기 해방을 위한 깨달음은 그렇게 고매한 지식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님은 확실하다.
2010.2.1 ⓒ 김민석
김민석 : 개인적으로 신학을 공부하면서 10년간 NPO에서 봉사하였고, 이후 대학원에서 사회학 이론을 전공하고 있다. 정부 출연 연구원에서 정책 연구에 참여하면서 문화기획 프로젝트팀 Rêve[레브]를 이끌며 전시 · 공연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대안적 문화 창조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사람을 만나서 먹고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것이 삶의 기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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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revekim님의블로그 | 2010/02/18 18:23 | DEL
글 보러가기:바수밀다의 깨우침: 활동가에서 문화기획자가 된 사연온라인 당비(당대비평)에 실린 제 글입니다.그리고 문화기획자로서의 제 변입니다.원래 문화변혁에 관한 이론적인 글을 좀 더 썼었는데, 대상과 지면상 그 부분은 추후에 다른 글에 정리하기로 했습니다.비판이론을 전공하고 해방담론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공부와 또 경험적으로 부딪혀보아야할 것들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