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티스토리 툴바




rss

이메일 주소를 입력하세요


Delivered by FeedBurner
37,694  TOTAL
Today 12 Yesterday 14




이택광 | 한윤형 | 고재열 | 이상엽 | 이현우 | 우석훈
최신 당비의 생각을 만나세요!

[고정수의 일본 탐구 09]'민의'의 딜레마 고정수(다카이 오사무) | 칼럼니스트 2010/07/12
다시, 민주당을 생각하다 김신식 | 당비의 생각 간사 2010/06/07
[고정수의 일본 탐구 08] 다시, 문화를 생각하다 고정수(다카이 오사무) | 칼럼니스트 2010/06/03
[당비의생각]   2009/11/21 00:46

이상엽 | 사진가 · 작가

가림막의 진실 
협박과 폭력을 집어넣어 탐욕의 아파트를 꺼내는 추악한 마술

아주 멀리 돌아왔다. 스무 살 끝물에 카메라를 잡아 사회 다큐멘터리라는 것을 시작한 후로, 무엇에 홀렸는지 십수 년을 해외로 떠돌았다. 아시아 지역 대부분을 돌아다니며 인간의 피와 땀과 눈물을 발견했고 그들이 켜켜이 쌓아온 역사를 봤다. 그리고 마흔 중반을 앞두고 다시 우리 땅을 돌아봤다. 우리 땅 역시 그네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게 아프다. 여전히. 나의 우리 땅 작업은 동네에서 시작된다. 멀리 갈 필요 없이 바로 내가 기록해야 할 대상이 바로 옆에 있었다. 이제 1년 정도, 만들어진 아름다움에 감추어진 신음하고 소외된 우리 땅을 톱아본다. 그것이 사진하는 자의 책임이자 의무라 생각해본다.  


01_ 어느 날 우리 동네에 높은 장벽이 생겼다. 흔히 재개발 지역에서 ‘가림막’이라 불리는 것이다. 처음에는 철제 파이프 골조를 세우고 두꺼운 천으로 포장한다. 그리고 철거가 끝나면 그 자리에 철제 벽을 세운다. 동네 주민들이나 지나가는 이들은 가림막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다. 2009 금호동


02_서울 금호동 재개발 지역. 거대한 가림막 멀리 아파트가 솟아 있다. 오래된 동네가 사라지고서야 이 막들을 거둘 것이다. 그 자리에는 최신형 고급 아파트와 외지인들이 들어서고, 이곳에 살던 이들은 사라질 것이다. 2009 금호동


03_ 경주의 봉분처럼 거대한 구조물이 솟아났다. 그 주변은 거대한 집들의 무덤이다. 아직 살 만한, 아니 멀쩡한 집들도 보상이라는 명목으로 헐려나간다. 집은 사는 곳인가 아니면 부의 획득 수단인가. 2009 금호동


04_ 가림막의 안쪽은 거대한 폐허다. 그 폐허 속에서 소곤거림이 들린다. 아직도 이주하지 못한 세입자들의 두런거림이다. 지나가는 이는 불안하다. 2009 금호동


05_ 거대한 성벽이다. 철제 벽은 세상을 나눈다. 도저히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가자와 팔레스타인을 나눈 거 거대한 장벽처럼 말이다. 2009 금호동


06_ 서울 강북에는 이렇게 거대한 가림막이 솟아 있는 곳이 수없이 많다. 성북, 왕십리, 마포, 용산…. 가림막은 비밀스럽게 뭔가를 준비하다가 마술처럼 최신식 아파트를 내보인다. 하지만 그 집들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2009 마포


07_ 모두 헐리고 집 한 채만 남았다. 그 옆의 가림막 뒤로는 새 아파트들이 솟아났다. 마술처럼. 하지만 그 집들은 동네 사람들 몫이 아니다. 그들은 떠나야 한다. 2009 마포


08_ 가림막 안으로 들어가면 딴 세상이 펼쳐진다. 마치 이스라엘의 거대한 장벽을 통과해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로 들어온 느낌이다. 건물들은 폭격을 맞은 듯 처참히 부서져 있고, 멀쩡해 보이는 건물에는 붉은색 스프레이로 “빨리 꺼져라! 죽고 싶지 않으면” 등 흉한 낙서들이 씌어 있다. 2009 금호동


땅이 있어야 하고, 능수능란하게 조합을 운영해야 하며, 철거 깡패를 동원해 세입자들을 쫓아낼 정도로 용기(?)도 있어야 비로소 자신의 것이 된다. 바로 그때까지 가림막이 필요하다. 2009 금호동


10_ 한눈에도 터가 좋다. 한강이 멀리 보이는 명당이다. 이런 곳에 살 사람은 따로 있다. 예전에는 못사는 이들이 지대 높은 달동네에 살았다지만 세상이 변했다. 전망 좋은 높다란 곳은 돈 있는 이들이 살고 다닥다닥 복잡한 저지대는 이제 돈 없는 이들이 산다. 2009 옥수동 


11_ 섬뜩하다. 여기는 범죄 현장일까? 아니면 고고학 발굴 현장일까? 주민들이 떠난 철거 현장은 공포가 감돈다. 있는대로 카메라를 들이대는 내 가슴은 두근거린다. 삶의 현장에서 쫓겨난 이들의 마음이 이곳을 여전히 맴도는 것일까? 내 등 뒤를 누군가 툭하고 치고 갈 것 같아 불안하다. 2009 금호동


12_ 용역업체 직원들의 손놀림이 바쁘다. 쿵쿵거리며 포클레인들이 건물을 통째로 쓰러뜨리고, 고물상들은 쓸 만한 알루미늄 새시를 뜯어낸다. 하지만 전쟁터 같은 이 현장이 며칠 지나면 일상이 된다. 이 굉음이 일상이 되는 그 절망이 두렵다. 그 길들임이 두렵다. 2009 금호동


13_ 아비규환의 현장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다. 아직도 이주할 곳을 찾지 못한 세입자들이다. “우리라고 여기 살고 싶나. 내가 여기 20년은 살았는데, 이제 어디로 가나. 돈이 있어야지.” 박분자(72) 할머니처럼 월세 15만 원을 내며 살던 독거노인은 갈 곳이 없다. 2009 마포


14_ 서울 용산구 한강로 3가 63-70번지. 경찰차가 가림막을 대신하고 있다. 이곳에서 철거민 5명이 불에 타 숨졌다. 이제 가림막은 죽음도 은폐한다. 2009 용산


15_ 가림막은 집을 사람이 살아가는 거주지가 아니라 투기 대상으로 여기는 자들을 위해 마무리 서비스를 하고 있다. 그 서비스는 참으로 잔인하고 몰염치했다. 2009 용산


16_ 용산 철거민 학살 현장에 갔다. 그곳에서 또 다른 가림막을 봤다. 그 가림막은 살아 있었다. 바로 국가 공권력이라는 가림막이다. 사건 현장은 볼 수도 없게 전경버스로 가로막아졌고, 골목 곳곳은 투구를 쓰고 방패를 든 전경들에 의해 막혀 있다. 2009 이상엽


17_

“故 윤용헌(49세)

1961년생

서울시 중구 순화 철거민대책위위원장

영세 상가 세입자

2009 1월 20일 새벽

경찰의 살인진압으로 사망”

2009 용산


18_ 용산 재개발 지역을 감춘 가림막 위로 국화가 피었다. 가림막 안쪽에는 아직도 별을 헤는 난쟁이들이 있다. 2009 용산


19_ 가림막이 거대한 화판으로 변했다. 그들의 소망은 다시 아프게 새겨진다. 그들을 잊지 않는 것은 단지 슬퍼서가 아니다. 이 도시에서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이들의 ‘플래쉬포워드(미래 장면)’이기 때문이다. 2009 용산


20_ 21세기, 여전히 우리 주변에는 가림막 안쪽에서 별을 헤는 난쟁이들이 있다. 가림막이 세상을 나눈다. 멀쩡한 것과 부서진 것, 소유한 것과 소외된 것. 이 불안함은 모두의 영혼을 잠식한다. 2009 용산 

가난한 이의 억울한 죽음 위에 세워진 궁전에서 편히 잘 수 있는가? 이 불쌍한 영혼들이 떠도는 용산 땅에서 발 뻗고 쉴 수 있는가? 사과의 손을 내밀라. 그들은 단지 자신들이 갖고 있던 얼마 안 되는 것을 지키기 위해 싸웠다. 하지만 그것을 빼앗아 수십 수백 배의 이익을 누리려 했던 이들은 무엇이 그리 당당한가? 이 글을 쓰는 오늘은 참사가 난지 300일이 넘었다. 그 사이 변한 것은 없다. 은폐와 뻔뻔함만이 쓸쓸히 돌아온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 여전히 많다. 양심들은 깨어 있고, 우리는 여전히 미안해해야 한다. 침묵은 공범이다.

2009.11.21 ⓒ 사진·글 이상엽

이상엽 : 다큐멘터리 사진가이자 논픽션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했고, 《사회평론 길》에서 글을 쓰면서 사진을 시작했다.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여러 매체에 사진과 글을 기고했다. 1997년 몇몇의 동인들과 시험적인 인터넷 사진 매거진 〈다큐네트〉를 창간했고, 1999년 진보적인 다큐멘터리 사진 웹진 〈이미지프레스>를 창간했다. 2001년 사진집 『아이들에게 전쟁 없는 미래를』 이후 출판에 힘을 써 『이상엽의 실크로드 탐사』 『레닌이 있는 풍경』 『중국, 1997~2006』 등의 개인 저서와 『낡은 카메라를 들고 떠나다 1,2』 등을 기획하고 저술했다. 개인전으로 2004년 <머나먼 실크로드>, 2005년 <아시아>, 2008년 <청계의 나날들> 등이 있다. 네이버 ‘오늘의 포토’ 심사위원과 내셔널지오그래픽(한국판) 심사위원을 지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Trackback Address :: http://dangbi.tistory.com/trackback/26 관련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