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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비의생각]   2009/11/12 11:01

 최태섭 | 칼럼니스트

난리가 났다. 난리의 진원지는 이미 많은 분란들의 진원지였던 KBS의 <미녀들의 수다>이다. 사연인즉슨 이렇다. 프로그램에서 마련한 ‘한국 여대생과의 만남’ 자리에서 한국의 한 여대생은 “키 180cm 이하는 루저”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리고 문제가 커진 이후 대본에 써 있는 대로 말을 했을 뿐이라고 주장을 했지만, 결국 그녀는 된장녀의 계보에 이름을 올렸다.

곳곳에서 스스로를 루저라고 선언하는 남자들이 등장했고, 그들은 악플, 패러디, 신상 공개, 싸이홈피 공격 등, 이제는 하나의 형식으로 안착했다고 볼 수 있는 ‘인터넷 성전’을 벌여나갔다. 뿐만 아니라 그 발언이 “성희롱”이라고 주장하는 사람, 제작진과 본인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하는 사람, 심지어는 그 학생을 학교에서 제적하고 학과장과 총장이 사과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서명 운동도 시작됐다.

남자들의 반응은 대략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개념찬 ’(외국)여자들에 대비되는 한국여자들에 대한 비난 ▲키가 작지만 훌륭한(돈이 많거나, 권력이 있거나…) 남자들에 대한 재인식 ▲테러하겠다는 협박 ▲성적인 욕설 ▲외모에 대한 비하 ▲여성 루저의 기준을 만들자는 주장 같은 것들이다. 그리고 이 반응들 가운데는 비슷한 혐의로 욕을 먹고 있는 다른 한 명의 여대생과, 자신을 트랜스젠더라고 밝힌 여대생에 대한 혐오 섞인 비난, 마지막으로 ‘루저 발언’에 반론을 제기한 독일인 고정 출연자와, 서울대를 다니며 책이 많아서 핸드백이 아니라 배낭을 메고 다닌다는 여성에 대한 애매한 ‘찬사’가 곁들여져 있다. 여기까지가 현재까지 진행에 대한 스케치다.

 ‘돈만 열심히 벌면 예쁜 여자를 얻을 수 없다’

사람들로부터 “루저의 난”이라고 명명된 이번 사건은 사실 한국 사회가 놓여 있는 어떤 명백한 흐름에서 불거져 나온 한 징후에 가깝다. 아마도 그 흐름의 시작을 알렸던 것은 소위 ‘된장녀’라고 명명된 사이버공간에서 탄생한 ‘합성 괴물’일 것이다. 이 된장녀라는 기표는 그 이미지를 재생산하기 위한 미디어의 노력과, 때마침 터졌던 모 여자 연예인의 발언(포인트 카드를 사용하는 것은 없어 보인다는 요지의…)에 힘입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그것이 넌지시 암시하는 ‘불안’ 때문에 더욱 격렬한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이 불안의 내용이란 이런 것이다. 요컨대 ‘정말로 착하고, 예쁘고, 개념찬 여자는 허영심과 거리가 멀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나를 사랑할 수도(더 정확하게는 나와 자줄 수도) 있다.’라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환상이 하나 존재한다. 그러나 이 환상은 점진적으로 증식해가는 여성들의 성적 자유와 욕망의 실체들을 마주하면서 깨져나간다. 쉽게 말해 ‘난 그녀들을 만족시킬 수 없다’라는 자각, 그리고 그에 따른 귀결인 ‘나는 예쁜 여자와 잘 수 없다’라는 현실 판단.

그러므로 명품백을 사줄 수 있지도, 외제차를 소유하고 있지도, 키가 180cm를 넘지도, 포인트를 사용하지 않고서는 패밀리레스토랑의 식사비를 감당할 수 있지도 않은 남자들은 분노에 빠져든다. 그중에서도 여성들이 ‘키’라는 외모적인 잣대를 가지고 남자들을 ‘평가’한 이번 사건은 ‘돈만 열심히 벌면 예쁜 여자를 얻을 수 있다’는 이차적인 환상까지 위협하는 것으로 다가온다. 이것은 가히 ‘열등종자의 낙인’이나 다름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능력이 안 되면 노력이라도 할 수 있지만, 닫힌 성장판은 다시 열리지 않는다는 엄혹한 사실이 이 ‘루저의 난’을 더욱 폭발적인 반응으로 이끄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의 이 격렬한 반응들, 특히 그 반응들 중에서도 심심찮게 드러나는 ‘상처 입은 울부짖음’들은 이해받기에 앞서 의문시되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들의 반응은 ‘불평등’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느 ‘여자’가 자신들을 키라는 기준으로 재단하려 했고, 자신이 그것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상처’를 입었다고 날뛰고 있다. 그러나 여성의 외모에 대한 님성들의 품평과 판단 기준의 놀라운 발전을 보면 그것이 상대방에 대해서는 얼마나 일상적으로 행해졌는가를 알 수 있다. 요컨대 “꿀벅지”를 감별해내는 남자들의 능력과, 심지어 어느 것이 최상의 꿀벅지인가를 두고 벌어지는 격렬한 논쟁들을 보라. 그뿐인가. 가슴 사이즈와 모양에 대한 오래된 ‘담론들’과 성형 여부를 판독하는 ‘매의 눈’까지 갖춘 그들은 언제나 거침없이 여성의 몸을 심판대 위에 세우고 재판을 행한다. 그런 그들이 고작 자신들에게 주어진 180cm라는 나이브하기 그지없는 줄자 하나를 성토하느라 이토록 열을 올리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궁색한 풍경이다.

그들만의, 가련한 쾌락의 평등주의

더불어 이 반응들의 기저에 깔려 있는 어떤 평등주의적인 요구, 다시 말해 “키가 작다고 차별하지 말라”라는 명제는 그 뒤로 암암리에 이어지는 “그러므로 나도 예쁜 여자와 섹스 할 권리가 있다”라는 명제와 논리적으로 부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것에 대해서는 “그럼 (여자를) 외모로 차별하지 말아라!”라는 더 보편적인 수준에 대항명제가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80cm가 그토록 경악스러운 것은 그동안 ‘보는 자’로만 일관했던 남자들의 뒤통수에 그들을 바라보는 또 다른 눈빛이 생겨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스스로 세운 기준들, 요컨대 ‘내면의 건실함’이나, ‘외모로 드러나지 않는 비범함’ 같은 것들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여자들이 자신의 욕망에 따라 남자를 품평하는 기준들을 점점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는 것은 21세기 이후 남자들에게 주어진 크나큰 시련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렇게 새로이 생겨나는 기준들을 ‘된장녀’에 업데이트 시키고, 그것을 공격하거나, 거부하겠다고 성질을 부리는 것은 사실상 ‘반동’에 지나지 않는다. 만약 쾌락의 문제에 있어서 유일한 도덕률이 있다면 그것은 나의 쾌락을 위해 누군가를 억압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일 터이다. 그리고 여자들에게 생겨나고 있는 새로운 기준들은 간단히 말하자면 자기 스스로 만날 사람을 ‘선택’하겠다는 차원의 문제다. 그러나 이번 사태에 대한 대부분의 반응들은 타자들이 자신만의 쾌락의 기준을 만드는 것을 ‘금지’하고자 하는 것에 가깝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여자들이 남자들의 말을 들어야하는 이유는 점점 사라져가고 있으며, 이런 가운데서 가련한 금지의 시도는 필연적으로 실패로 돌아갈 것이라는 점이다.

어차피 우리가 톰 크루즈도, 장동건도, 나폴레옹도, 루즈벨트도 아니라면 ‘키 작은 위인들’을 찾아내는 것은 아무 위안도 주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발생하고 있는 ‘타자의 쾌락’을 시기하거나 금지하려고 시도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곤경에 빠트리는 쾌락의 법칙들에 대한 변화를 시도해야할 때다. 그 작은 시도로서 통계적으로 180cm보다 희귀한 C컵 타령부터 멈춰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2009.11.11ⓒ 최태섭

최태섭 : 생계곤란을 겪던 어느 날 우연하게 딴지일보가 만든 전격 성인 커뮤니티인 남로당에 하나도 야하지 않은 칼럼을 쓰게 되었다. 게임, 페미니즘, 만화에 대한 칼럼을 연재하다가 2007년 딴지일보에 전격 입사하여 ‘쿠르세’라는 필명으로 글을 쓰게 되었다. 중요도로는 겉절이에 지나지 않으나, 재직기 간 도중 월급을 다 받은 거의 유일한 기자라는 전설적인 경험을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진로를 고민하다가, 어차피 뭘 해도 안 되니 하고 싶은 것을 하자는 일념으로 대학원에 들어가 사회학과 문화연구를 공부하고 있지만, 사실상 뭘 하고 있는지는 본인도 알 수 없어 괴로워하고 있다. curse13@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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