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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비의생각]   2009/10/21 04:43

최태섭 | 칼럼니스트

원더걸스가 뽕짝거리는 사운드와 함께 <Tell me>를 부르며 도래했을 때, 수많은 ‘삼촌’들은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다. 이 삼촌들이 보기에 원더걸스는 기존의 ‘걸’그룹과는 달랐다. 그들은 ‘우리들은 신세대!’라며 기성세대를 무시하는 기존의 ‘아이돌’이 아니었다. 그들은 앳된 얼굴과 몸에 20대 후반의 옷들을 걸치고 기성세대의 노래를 부르며 걸그룹에 대한 연령제한을 ‘대폭’ 높여놓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원더걸스가 의미하는 것은 사실 대중가요계의 오랜 금기 하나가 종언을 고했다는 것이기도 하다. 아마도 ‘어린(혹은 10대의) 육체를 직접적으로 탐하지 말라!’라고 할 수 있을 법한 그 금기는 박진영이라는 걸출한 아저씨에 의해 성공적으로 그리고 은밀하게 깨져나갔다. 한국 남성들의 오랜 로망중 하나인 ‘영계 판타지’가 대중문화 영역에 (재)등장하는 순간이었다.

걸그룹은 자신과 관계없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던 삼촌들은 이 ‘친절한 걸’들에게 빠져들었다. 그러나 어딘가 찝찝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30대 이상의 나름 살만한 남성들이 모여든다고 하는 어느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당시 “원더걸스를 성적으로 향유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정당한가?”를 두고 일대 격론이 벌어졌다. 그러나 아저씨들이 왠지 모를 찝찝함의 정체를 규명해내기도 전에 원더걸스는 걸그룹 사상 전례 없는 성공을 거두며, 당시 경쟁하던 아이돌의 명가 SM에서 나온 소녀시대를 앞섰다. 결국 소녀시대는 전형적인 아이돌의 이미지인 ‘소녀’를 벗고, 청바지와 티셔츠를 입은 ‘여대생’으로 돌아왔을 때야 비로소 대박을 맞이할 수 있었다.

걸그룹들의 '치킨 게임'?
 
원더걸스의 성공과 금기의 해제는 걸그룹을 ‘대세’로 만들어냈다. 이 대세를 타고 수많은 연예기획사들에서 사활을 걸고 걸그룹들을 만들어냈다. 오늘날 가요계뿐만 아니라 전체 대중문화에서 걸그룹을 뺀다면 남는 것은 고작해야 강호동과 유재석, 개콘 정도일 것이다. 이런 양적 팽창의 시대에는 그야말로 ‘구별짓기’가 중요해진다. 이중에서도 가장 획기적인 것은 2ne1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2ne1은 소녀시대나 원더걸스 혹은 카라와 경쟁하지 않는다. 그들은 한국 최초의 ‘여성용’ 걸그룹이라 불려도 무방할 것이다. 물론 이런 컨셉이 실현 가능해진 것은 걸그룹 폭증이 불러온 예기치 않은 결과 때문일 터다.
 
 어쨌거나 결국에는 모든 그룹들이 생존을 걸고 각자의 컨셉과 강점을 통한 차별화 시도들을 한다. ‘생계형 아이돌’ 같은 별명을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그룹 중에 한 명을 중점적으로 앞세워서 마케팅을 하거나, 예능프로 출연 같은 것을 통해 친근한 이미지를 형성하거나. 사실 가장 정석적인 전략으로는 남들보다 좀 더 ‘섹시하게’ 가는 것도 있을 게다. 소녀시대의 최근 컨셉, 카라의 엉덩이춤, 꿀벅지 논쟁, 포미닛의 치마길이 논란 같은 것들은 이 정석에 충실하게 조응하고 있는 경향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들이다.

 아직까지도 ‘대형신인’급 걸그룹들이 등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구별짓기의 시도는 결국에는 ‘치킨 게임’의 형식을 띠게 될 수밖에 없다. 브라운아이드걸즈의 ‘대박’은 이것의 서장을 알리는 사건 같은 것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원래는 ‘실력파 여성 R&B 그룹’ 쯤으로 자리를 잡고 있던 그들은 ‘실력파’의 시대가 끝났다는 것을 알리며 또 한 번의 “패러다임 쉬프트”를 감행했다. 어쩌면 이것은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른다. 원더걸스 이후의 대중음악계는 ‘걸’그룹이 원래 ‘20대 여성’ 그룹의 역할이었던 섹스어필을 조금씩 흡수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물론 이 배후에는 음반시장의 전반적인 침체가 있고, 그렇기 때문에 기존에 이 시장에 참여하지 않는 이들로 하여금 소비자가 되도록 해야 할 명백한 이유가 존재한다. 그 덕에 아버지와 아들, 삼촌과 조카가 같은 혹은 다른 걸그룹의 팬이라고 자처하는 기묘한 형태의 세대 통합이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경향은 브라운아이드걸즈가 보여준 모습, 즉 ‘섹스어필’의 획기적인 강화라는 하나의 게임에 모든 ‘걸’그룹들을 참여하도록 압박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개연성이 매우 크다. 이미 무대에서는 수많은 ‘걸’들이 ‘프로 정신’이라는 애매한 정당화의 기제 하에서 은유적이거나, 직접으로 섹스어필의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대부분의 탤런트들이 스스로에 대한 결정 권한도 부여받지 못한 채 ‘일’하고 있다는 현실을 감안해보면, 결국 이러한 쾌락들의 생산과 사회적 승인을 결정하는 것은 모조리 높은 곳에 있는 ‘아저씨’들의 몫이다. 물론 ‘잉여가치’의 처분권도 포함해서.

 반항아는 사라져가고 ‘착한아이’는 늘어만 간다

 한국의 걸그룹은 하나의 아이러니다. 그들은 어쨌거나 ‘성’에 기반하고 있는 쾌락들을 생산해내지만, 정작 그 자신들은 그 성의 주체도, 향유자도 될 수 없다(만약 미성년자라면 더더욱 그렇다). 물론 영특한 이들은 조심스럽게 알아서 잘할지도 모르겠지만, ‘공식적’인 영역에서 그리고 그들이 ‘걸그룹’으로 활동하는 한 그것은 ‘금지’된다. 혹은 심지어 ‘거래’에서마저 그들은 상품의 역할일 뿐 정말로 ‘파는 자’의 역할조차 맡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생산과 소비의 측면에서도, 인간이란 존재의 실존적인 측면에서도 그들의 입지는 생각하는 것보다 좁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걸그룹의 구성원들이 집단적인 ‘허위의식’에 사로잡혀 있다거나, 이러한 쾌락은 금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야말로 부질없는 이야기일 것이다. 오늘날 쾌락의 문제에 있어서 금욕적인 답안은 99.9%의 확률로 오답이다. 거기에 위법적이지도, 더 이상은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지도 않는 종류의 승인된 쾌락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걸그룹들이 선사하는 쾌락을 마음 놓고 즐기기에는 어딘가 씁쓸한 뒷맛이 남는다. 이것은 어쩌면 애도 아니고 어른도 아닌, 어정쩡하게 웃자라서 대체 뭔지도 잘 모르겠는 ‘프로’라는 수식어를 달기위해 애쓰는 그 모습들이 나를 비롯한 ‘애’들의 모습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렇게, ‘반항아’들은 점점 사라져가고, ‘착한아이’들은 나날이 늘어만 간다.

2009.10.21 ⓒ 최태섭

최태섭 : 생계곤란을 겪던 어느 날 우연하게 딴지일보가 만든 전격 성인 커뮤니티인 남로당에 하나도 야하지 않은 칼럼을 쓰게 되었다. 게임, 페미니즘, 만화에 대한 칼럼을 연재하다가 2007년 딴지일보에 전격 입사하여 ‘쿠르세’라는 필명으로 글을 쓰게 되었다. 중요도로는 겉절이에 지나지 않으나, 재직기 간 도중 월급을 다 받은 거의 유일한 기자라는 전설적인 경험을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진로를 고민하다가, 어차피 뭘 해도 안 되니 하고 싶은 것을 하자는 일념으로 대학원에 들어가 사회학과 문화연구를 공부하고 있지만, 사실상 뭘 하고 있는지는 본인도 알 수 없어 괴로워하고 있다. curse13@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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