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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비의눈길]   2009/10/11 12:26

한윤형 | 인터넷 논객

오바마의 노벨평화상 수상은 정당한가? 평화를 향한 그의 업적이 아직 가시화되지 않았다는 점을 생각하면 당연히 그렇지 않았다고 말해야 할 터이다. 한편으로는 대량살상을 기획한 이들에게도 주어졌던 이 상의 공정성을 따지는 것 자체가 객쩍은 일이라고 일침을 가할 수도 있을 게다. 하지만 조금 다른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또 하나의 재미있는 얘기가 나온다.

오바마의 노벨평화상 수상이 미국 정치에 영향력을 미치기 위한 ‘정치적인 것’이라는 점은 누구나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노벨평화상 선정이라는 절차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그 정치적인 간섭이 어떤 문맥에서 정당화되거나 부당화될 수 있느냐이다. 국민국가의 민주주의라는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미국 시민의 정치적 선택에 대한 노벨상위원회 측의 정치적 간섭(?)은 부당할 것이다. 그런데 이 간섭을 미국 정계에 영향을 미치고 싶어 하는 세계 시민들의 소망의 반영이라고 얘기한다면 어떨까? 논의 자체가 근본적인 수준으로 점프한다.

말하자면 우리가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이유는 나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건들에 대해 나 자신의 의사가 반영되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명박이 4대강을 불도저로 밀어버리면 괴롭기 때문에 우리는 그와 경쟁자들을 하나의 공간에 몰아넣고 투표를 통해 선택하는 절차를 걸쳐야 한다. 그런데 미국 대통령은 국민국가의 ‘이념’과는 상관없이 실제로 세계 시민들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중동이나 한반도 등 특별히 표 나는 곳을 빼고 유럽 시민들의 입장에서 본다고 해도 그렇다. 부시 대통령은 미국 대통령이 세계 시민들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안겨줄 수 있는지를 온몸으로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그렇다면 세계 시민들은 미국 대통령의 선출에 관여해야 할 필요성을 가지는 게 아닌가? 그렇지만 현행 체제에선 관여할 방법이 없다. 그러므로 노벨상위원회의 ‘부당한’ 정치적 간섭은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이 없는 상태에서 나오는 ‘정당한’ 간섭일 수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세계화라는 말이 유행한지 10년도 훌쩍 넘은 한국 사회에도 적용할 수 있는 얘기다. 이 얘기를 농담처럼 엄밀하게 적용하면 한국인들이 미국 대통령에 대한 투표권을 가지고 싶다는 ‘공세적 소망’을 넘어 한국의 선거에 외국인이 개입해야 할 필요성이 도출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몇몇 동남아 국가의 국민들은 실제로 대한민국의 정치에 큰 영향을 받고 있는 것 같다. 자국 내의 비정규직 문제나 철거민 문제도 ‘갈등’으로 정치화하지 못하는 국가에게 이런 요구는 너무 이르지만, 언젠가는 동남아의 인권단체들도 자신들에게 도움이 되는 한국의 노동운동가들에게 메달을 수여하면서 미약한 힘으로라도 ‘간섭’을 시도하려 들지도 모르는 일이다. 물론 노벨상의 권위와 그들의 권위 사이엔 큰 차이가 있고, 한국의 ‘조중동’은 그런 사례를 한 줄도 보도하지 않을 거라는 씁쓸한 진실이 남아 있지만 말이다.

2009.10.11 ⓒ 한윤형

한윤형 : 인터넷 논객. 고등학생 때 서울대와 《조선일보》 주최 논술경시대회에서 대상을 받고서 안티조선운동의 참여자임을 밝히며 《조선일보》 인터뷰를 거부해 화제가 되었다. 2007년부터 본격적으로 여러 지면을 통해 글을 발표하고 있다. 지은책으로 『키보드워리어 전투일지 2000-2009』, 『그대는 왜 촛불을 끄셨나요』(공저), 『뉴라이트 사용후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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